
비행기를 타고 물이나 커피를 마셔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느낌을 받는다. “맛이 왜 이렇게 밍밍하지?”, “집에서 마시던 커피랑 완전히 다른데?”라는 생각 말이다. 실제로 많은 승객들이 기내 음료가 싱겁거나 텁텁하다고 느낀다. 이는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라, 비행기라는 특수한 환경이 우리의 미각과 후각을 동시에 바꿔 놓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당연하게 느끼던 맛이 하늘 위에서는 전혀 다르게 인식되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살펴보자.
(기내의 낮은 기압이 미각을 둔하게 만든다)
비행기는 약 10,000m 이상의 고도로 비행하지만, 객실 내부는 그보다 낮은 기압으로 유지된다. 보통 해발 2,000~2,500m 산 정상 정도의 압력 환경이다. 이 낮은 기압은 우리 몸에 미묘한 변화를 일으킨다.
특히 혀에 있는 미각 세포의 감도가 떨어진다. 연구에 따르면 기압이 낮아지면 단맛과 짠맛을 느끼는 능력이 약 20~30% 정도 감소한다. 즉, 같은 물이나 같은 커피라도 지상에서 마실 때보다 맛을 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항공사 기내식은 지상에서 먹을 때보다 간을 더 세게 맞춘다. 그래도 승객 입장에서는 “맛이 약하다”거나 “심심하다”고 느끼게 된다. 물 역시 평소보다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밍밍하게 느껴진다.
(극도로 건조한 공기가 후각을 마비시킨다)
맛의 70% 이상은 사실 혀가 아니라 코(후각) 가 담당한다. 음식 향을 제대로 맡지 못하면 맛도 함께 사라진다.
비행기 기내의 습도는 보통 10~20% 수준으로, 사막보다도 건조하다. 이런 환경에서는 코 점막이 쉽게 마르고, 후각 세포의 기능이 둔해진다. 그 결과 음식과 음료의 향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다.
커피가 특히 맛없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커피의 핵심은 향인데, 건조한 기내에서는 그 향이 거의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내 커피는 쓴맛만 강하고, 풍미는 사라진 음료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토마토 주스나 탄산음료는 비교적 맛이 유지된다. 신맛과 감칠맛은 기압과 습도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항공사에서 토마토 주스를 추천 음료로 제공한다.
(우리 몸 자체가 비행 중 스트레스 상태가 된다)
비행 자체도 몸에 작은 스트레스를 준다.
- 엔진 소음
- 미세한 진동
- 장시간 앉아 있는 자세
- 산소 농도 감소
이 모든 요소가 자율신경계를 자극한다. 몸이 긴장 상태가 되면 소화 기능과 미각 기능은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밀린다.
또한 비행 중에는 체내 수분이 빠르게 빠져나가 탈수 상태가 되기 쉽다. 입안이 마르면 미뢰(맛을 느끼는 기관)의 민감도가 더 떨어져 물맛이나 커피맛이 더욱 밋밋해진다.
그래서 기내에서는 아무리 좋은 원두로 만든 커피라도 “맛없는 커피”가 되기 쉽다.
정리
비행기에서 마시는 물과 커피가 맛없는 이유는 음료의 품질 때문이 아니다. 낮은 기압, 극도로 건조한 공기, 그리고 비행이 주는 신체적 스트레스가 동시에 우리의 미각과 후각을 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끼는 맛은 혀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공기의 압력, 습도, 몸 상태까지 모두가 함께 만들어내는 감각이다. 하늘 위에서는 그 조건들이 완전히 달라진다.
다음에 비행기를 탈 때 커피가 유난히 쓰고 물이 싱겁게 느껴진다면, “내 입이 이상한 게 아니라 환경이 달라졌구나”라고 생각해도 된다. 그 순간에도 우리 몸은 낯선 하늘 환경에 맞춰 조용히 적응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